웰컴 투 머신 (Welcome to the Machine) - 데릭 젠슨, 조지 드래펀 (2006)
이런저런 책 읽기 | 2007/02/06 10:53
Jensen Derrick, George Draffan, 2004, Welcome to the Machine: Science, Surveillance and the Culture of Control, Chelsea Green Publishing Company.
구입한 지 꽤 시간이 지난 책인데 내 책상 옆에 굴러다니는 것이 눈에 띠여 오늘 읽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는 엄청난 시간낭비였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인터넷 뉴스나 서핑하는 것이 더 유익했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럼 이 책이 그 정도도 쓸모없는 책이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간을 쪼개어 읽어봐야 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지금 전세계가 기계과 기술과 과학과 정보의 지배하에 놓여 있고, 그것은 점점 더 우리의 삶을 죄여올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우리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요약이다. 그리고 책의 대부분 분량은 엄청나게 발전한 기계와 기술들이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꿔놓고 있는가 혹은 권력자들의 욕심이 얼마나 집요한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저자들은 작은 가능성을 엄청나게 부풀려 대단한 무언가가 나온 것처럼 보도해버리는 그렇고 그런 "찌라시" 언론 기사들을 한데 묶어 앞으로의 사회가 얼마나 암울할 것인가를 열심히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좀 심했다.
세상은 이미 벤담이 말한 "팬옵티콘(Panopticon)"에 둘러싸여 있고, 인간은 무기력하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동의할 수 있고 올바른 이야기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상상력이 뛰어나다. RFID를 통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를 스타벅스 직원도 알 수 있고 그래서 당신의 차를 세우고 검문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 생각으로 실제 저런 일이 벌어지려면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많이 후퇴해야 한다. 저자들은 기술과 기계가 갖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너무나 증폭시킨 나머지 다른 사회적 요인과 맥락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감시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스타벅스 직원이 합법적인 경찰의 지위를 갖게 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저자들이 제시하고 이 사례는 책을 읽어봐야 자세히 알 수 있다.) 나는 저자들이 우려하는 상황에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독자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려는 저자들의 그런 시도들도 그들이 혐오하는 팬옵티콘 꼭대기의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동일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은 구체적인 증거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쥐의 두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 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만을 가지고 조만간 권력자들이 인간을 원격조정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점도 공감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자들은 그들이 비판하는 권력자들의 이중 스파이 같은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 "톱니바퀴의 삶을 거부하라"는 식의 선동적인 구호들뿐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삼류 찌라시의 스타일이다.
현대 사회가 기계 문명의 바탕에 서 있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기계에 의해 인간성이 무시되는 현실을 변혁하여 진정으로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목표를 이루려면 올바르고 냉철한 현실분석과 그에 따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이 책이 주는 미덕은 기계문명이 인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한 여러 문제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 책의 역할은 끝이다. 나처럼 순진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과 우리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을 이미 아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또한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이 책의 어투가 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희는 이런 것 몰랐지? 내가 잘 알려줄게,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그리고 정말로 기분을 더 상하게 한 것은 내가 이 책을 돈 주고 샀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더욱 구체적이고, 분석적이고, 더 친절한 책들로 다음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만 적어 본다.
- 닐 포스트먼, 테크노폴리(Techno Poly): 기술에 정복당한 오늘의 문화, 김균 역, 궁리.
- Simson Garfinkel, 데이터베이스 제국(Database Nation),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역, 한빛미디어.
- 제임스 글릭, 빨리빨리: 초스피드 시대의 패러독스(Faster : The Acceleration of Just about Everything ), 석기용 역, 이끌리오.
- 데이비드 솅크, 데이터 스모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유홍림, 정태석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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