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is Casel, Sergio Sismondo, 2003, The art of science, Broadview Press.
책을 하나 다 읽고 나면 그 책의 내용을 음미해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서라는 것은 정신적 활동이 아니라 육체적 활동이 되고 만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운동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지난주 초에 다 읽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나를 방해해서 이제야 간단히 반추해 볼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기억을 더듬는 것이 수월치 않다. 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투자할만한 이유가 충분한 책이므로 용서가 된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책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읽고 나니 상당히 괜찮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책이고, 그리고 그 내용은 과학자가 하는 일은 예술가가 하는 일과 유사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저자들이 예술가와 과학자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자에 대한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 이 책에서 바로잡고자 하는 잘못된 인식은 책의 맨 뒷장에 아주 예쁘게 잘 요약되어 있어 그대로 인용해 본다.
- 과학자는 완벽한 논리를 지닌 컴퓨터 같은 존재이다.
- 과학자는 통찰과 직관으로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천재다.
- 과학은 논리와 분석에 의존하는 비인간적인 작업이다.
- 과학적 진실은 불변하는 최종적 진리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종류의 대중적 믿음이 잘못된 것이고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의 과학자는 오히려 예술가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주장이라기보다는 쉬운 설명을 위한 비유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 분야의 초심자라면 이 책을 읽어 저자들의 설명을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여기 좁은 공간에서 위의 4가지를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그 중 "천재 과학자"라는 이미지 한 가지에 대해서만 간략히 논의해보자. 사실 이제부터는 어쩌면 이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천재 과학자(?)
사실 과학자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중적 이미지는 바로 천재 과학자와 관련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만, 스티븐 호킹과 같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은 열심히 연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번득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적인 이론을 만들어낸다고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나 언론이 만들고 과장하고 재생산하는 극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실제 과학이라는 활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절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오류와 실수, 실패, 다른 과학자들과의 논쟁, 조언, 협력 등등의 복잡하고 지루한 오랜 노력의 산물이다. 대다수의 과학적 업적은 천재적인 통찰력보다는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물론 천재적인 통찰력으로 약간의 수고를 덜 수는 있다.
통찰과 직관은 과학에서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과학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발전시키고 검증하는 과정은 절대로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렵고 지루한 노력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대중에게 보이는 과학은 화려한 결과들뿐이다. 그러니 저런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짜 천재과학자는 없다는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어느 분야에나 남들보다 그것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과학에서 천재들은 남들보다 저 지루한 과정을 좀 더 빨리하거나 좀 더 적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즉, 천재들은 시간을 조금 단축할 수 있을 뿐이다.
기본기는 언제나 중요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어떤 드라마 때문에 농구가 대유행을 했다. 농구를 잘 하는 친구들은 많은 부러움을 샀고 그들은 더 화려하고 멋진 기술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마침 우리 학교 체육선생님이 전직 대학농구선수 출신이었다. 선수를 그만둔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이라서 확실히 수준이 달랐다. 어느 날 체육시간에 우리학교에서 농구를 잘한다는 녀석과 선생님이 일대일로 시합을 했다. 물론 재미로 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 녀석에게 7점을 접어주고 시작했다. 즉, 선생님은 10점을 내야 하지만, 그 녀석은 3점만 내면 이기는 것이다. 결과는 10:7 선생님 승리! 그렇게 잘하던 녀석은 십수년간 농구를 그만둔 나이 든 전직 선수한테 단 한점도 얻지 못했다. 그 당시는 제법 놀라운 결과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화려하고 멋진 기술이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지는 몰라도 진짜 중요한 것은 시합을 이기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화려하고 멋진 드리블보다는 안정적이고 볼을 빼앗기지 않는 드리블이 더 중요하고, 여러 사람을 제치고 골을 넣는 화려한 더블클러치나 강렬한 덩크보다는 안정적인 레이업이 시합을 이기는 데 더 중요한 법이다.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외부로 보이는 것은 놀라운 아이디어로 출발한 멋진 이론이지만, 실제 그 과정에서는 가설설정, 관찰, 실험, 검증, 데이터처리 등등을 잘하는 착실한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기본기가 제대로 갖추어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과학을 할 수 없다. 제아무리 천재적인 과학자라고 해도 이런 기본기에 대한 숙련은 필수적이다. 대학원은 괜히 다니는 것이 아니다.
생활의 달인!
하지만 뛰어난 과학자들은 놀라운 통찰과 직관력이 있다. 그들은 갑자기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연구를 한번 간단하게 훑어보기만 해도 그것이 대단한 것인지 쓸모없는 것인지 금방 파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타고난 천재들이 아닌가? 그들은 정말로 다른 과학자들과는 다른 것인가?
이 문제는 작년 어느 강의에서 내가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설명한 방식은 "생활의 달인"이라는 비유였다. 텔레비전을 보면,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혹은 자기의 업무에서 달인의 수준에 이른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이 세상에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은행원은 한 손에 정확히 100만 원씩 잡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지폐 더미 속에서 한 웅큼의 지폐를 잡는다. 그리고 느낌이 맞으면 100장이고 좀 아니다 싶으면 한두 장 덜어내거나 더한다. 결론은 언제나 100장이다. 그럼 이제 그 은행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그것이 정확히 100장인지 어떻게 아느냐?" 사실 답은 뻔하다. 그냥 아는 것이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기본기를 다지면서, 오랫동안 자기 분야에서 쌓인 경험으로 그냥 알 수 있게 된다. 그들도 역시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생활의 달인"들이다. 한 번에 정확히 100만 원을 잡아내지 못하는 은행원이라고 해서 능력 없는 은행원은 아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남들보다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고, 더 적은 노력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과학에서도 정확하게 동일하다. 마술처럼 보이는 과학자들의 통찰력과 직관력은 그냥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거대해진 과학
모차르트가 지금 태어났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비슷한 이유로 과학에서도 천재의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하다가 대단한 발견을 했지만, 지금 시대에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과학이라는 분야가 더욱 전문화되고 세분화되고, 그리고 규모가 더 거대해졌기 때문에 일개 개인이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처럼 엄청날 수가 없다. 따라서 한 명의 천재에 의해 세상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다시 나올 가능성을 과거보다 더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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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부생들이나 혹은 관심 있는 고등학생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즉, 절대로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쉬운 사례와 쉬운 언어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게다가 멋진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때문에 오래전에 저기 어디 구석에 처박아 둔 sismondo의 책을 다시 꺼내 보기로 했다.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초반에는 특정 미술사조와 현대 양자역학 사이의 관련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이 주제는 내가 오래전에 막연하게 생각해 둔 아이디어와 유사한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마주치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데, 나랑은 약간 생각이 다른 듯하니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어차피 그 주제는 내가 앞으로 10년 이내에 다시 붙잡을 시간이 없을 가능성 100%이다.
책 이야기하다가 결국 또 엉뚱한 이야기만 했다. 과학과 과학자의 대중적 이미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다루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글이 점점 더 무성의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여전히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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