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만 즐거웠던 뮤지컬 : 시카고 (Chicago,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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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나는 아내와 함께 뮤지컬 "시카고"를 관람했다. 아내가 추석 연휴에 이은 이틀 동안 휴가를 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게다가 민선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정말로 오랜만에 둘만 오붓하게 데이트를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공연이 그렇듯이 이것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우리는 다소 뒤의 좌석에서 관람했다. 뮤지컬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몇 년 전 "렌트(Rent)"를 관람한 이후 정말로 오랜만에 뮤지컬이었다.

이번에 공연하는 시카고는 주인공인 록시 하트(Roxie Hart) 배역만 더블케스팅이었다. 옥주현과 배해선이라는 배우인데, 나와 아내는 주저없이 배해선을 선택했다. 이유는 옥주현의 공연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수로서 옥주현은 훌륭하지만 뮤지컬 배우로서의 옥주현은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배해선은 누군지도 잘 몰랐다. 아무튼 우리의 선택은 그러했고, 간만에 뮤지컬을 보러 간다는 들뜬 기분에 외출을 했다.

뮤지컬 시카고는 몇 년 전에 이미 영화로 제작되었다. 르네 젤위거(Renee Zellweger) 라는 배우가 록시 하트를 매우 적절하게 소화했던 괜찮은 영화였다. 물론 DVD로도 갖고 있고, OST 음반도 갖고 있다. 이미 다 아는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주요한 줄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공연의 세세한 부분에 더욱 관심을 두고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을 관람하는 내내 자연스럽게 영화의 장면과 비교되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다. 아무리 좋게 봐도 그렇게 훌륭한 점수를 주기 어려운 공연이었다. 특히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이 시카고라는 뮤지컬은 카리스마 넘치는 두 명의 여 주인공이 무대를 압도하는 느낌이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그런 느낌을 얻기 어려웠다. 배우들의 노래는 수준급이지만 몸짓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것을 편집할 수 있는 영화와 비교하는 것이 무척이나 불공평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맨 마지막 장면은 두 여 주인공이 함께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어야 하는 장면이지만 느낌이 강렬하지 못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노래의 가사였다. 뮤지컬 시카고의 노래 가사는 하나같이 위트 넘치고 재밌는 표현들이 가득하다.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원래 가사가 가진 위트를 상당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은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영화 DVD에 실린 자막을 그대로 노래 가사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짜증까지 일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바로 여러 여성 죄수들이 함께 노래하는 "Cell Block Tango" 장면이었다. 이 노래는 죄수마다 자기의 이야기를 매우 재밌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유머를 사실 거의 살리지 못했다. 그나마 한글표현이 괜찮았던 노래는 "Mister Cellophane"이었는데, 사실 이 장면은 공연 전체에서 유일하게 내가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노래 가사와 관련해서 또 다른 문제는 전달력이었다. 배우들이 열심히 노래하지만 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못했다. 음향의 문제인지 배우들의 실력의 문제이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번역되지도 못한 가사가 잘 전달되지도 못했으니 참 답답한 상황이었다. 사실 나는 뮤지컬의 내용뿐만 아니라 노래, 그리고 가사까지 대부분 알고 있었으니 그다지 답답하지는 않았지만, 평일이라서 일부러 시간 내서 오신 수많은 아줌마는 피곤하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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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카고 공연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썼지만, 이 공연은 그런대로 봐줄 만한 공연이었다. 물론 티켓 가격만큼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멋진 부분은 바로 음악이다. 뮤지컬 배우의 멋진 퍼포먼스보다는 밴드의 음악이 매우 훌륭했다. 물론 배우들의 노래 실력은 인정한다. 절대 나쁘지 않았다. 시카고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실망스럽지도 않은 공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좋았던 것은 바로 왼쪽 사진에 있는 황만익이라는 배우이다. 공연에서 록시 하트의 남편인 에이모스(Amos)를 맡았던 배우이다. 그다지 비중이 높은 배역은 아니지만, 나는 특히나 맘에 들었다. 노래도 잘했고 무엇보다도 그 배역을 매우 잘 소화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배우를 주목해봐야겠다. 언제 또 기회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시카고와 이번 공연을 비교해보자면, 여자 배우는 영화가 낫고 남자 배우는 이번 공연이 나았다고 본다. 일단 록시 하트라는 인물의 매력은 르네 젤위거라는 배우가 압도적이라는 생각이다. 그 미묘한 백치미까지 표현해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르네 젤위거라는 배우를 넘어서기는 어렵다고 본다. 벨마 켈리(Velma Kelly)라는 인물은 영화에서의 캐서린 제타-존스(Catherine Zeta-Jones)나 최정원이나 비슷하다고 본다. 하지만 남자 배우는 모두 이번 공연의 배우들이 더 나아 보인다. 능글맞은 변호사 빌리 플린(Billy Flynn)은 리차드 기어(Richard Gere)라는 배우가 잘 어울리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에 있어서는 당연 이번 공연의 성기윤이 훨씬 더 낫고, 에이모스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평일 낮 공연은 나로서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시간대는 주로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 분명하다. 실제로도 관객의 절대다수가 중년의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이분들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관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몇 년 만에 아내와의 오붓한 데이트를 이런 식으로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음악이 흥겨워 그럭저럭 재밌는 공연을 관람했다. 뮤지컬 시카고는 그 음악도 최고이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두 여 주인공의 강렬한 퍼포먼스가 일품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이 두 가지를 모두에 성공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귀가 즐거웠던 공연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뮤지컬 공연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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